[살인번호]에서 구축된 제임스 본드의 클리셰들

EON의 첫 007 영화 [살인면허]를 감독한 테렌스 영 감독은 영화 전반에 걸쳐 제임스 본드의 클리셰를 구축합니다.
이후 [위기일발], [골드핑거]에서 Q나 본드카와 같은 새로운 클리셰가 일부 등장하지만, 기본적인 클리셰의 골격은 이 영화에 다 등장했습니다.

[살인번호]에서 정교하게 구축된 본드의 클리셰들을 알아보겠습니다.


1. Trench, Synvia Trench

James Bond: I admire your courage, Miss...?
Sylvia Trench: Trench. Sylvia Trench. I admire your luck, Mr...?
James Bond: Bond. James Bond.


본드가 스스로를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소개하기에 앞서, (본드의 고정 애인으로 계획되었던) 실비아 트렌치가 이런 식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 장면은 본드가 자신을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소개하는 클리셰를 만드는 것 외에도, 본드의 고정 애인이라는 클리셰를 만드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골드핑거]를 감독한 가이 해밀튼 감독은 실비아 트렌치를 제외시켜버립니다.


2. Baccarat Chemin de Fer의 필승



바카라(Baccarat)의 한 종류인 Baccarat Chemin de Fer제임스 본드의 카드게임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종목입니다.
소설 <카지노 로얄>에서 이 종목으로 르쉬프를 꺾었으며, 영화 [카지노 로얄]에서 '텍사스홀덤'으로 종목을 바꾸기 전까지 007 영화에서 본드는 언제나 이 종목으로 싸웠습니다.

영화 [살인번호]는 첫작품답게 Baccarat Chemin de Fer에서 승리하는 본드의 모습을 멋지게 보여줍니다.


3. 모자 던지기


코너리의 본드는 중절모를 썼는데, 언제나 모자를 던져서 걸었습니다.
이후 무어 시절에 와서는 해군 정복을 입고 있을 때는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문레이커]에서만 모자를 던져서 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편, [골드핑거]에서 오드좁의 칼날모자는 이 장면의 오마주입니다.


4. 머니페니와의 끈적한 로맨스


시간이 흐르면서 (즉, 코너리나 무어 그리고, 로이스 맥스웰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좀 퇴색하고, 다시 배우가 교체되면서 리부팅되는 과정들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어쨌든 본드와 M의 비서인 머니페니와의 관계는 다소 끈적한 로맨스 관계입니다.


5. M과의 관계


M이 여자(주디 덴치 여사)로 바뀌면서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이 카리스마의 감소입니다.
물론, 덴치 여사가 여성으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원조 M인 버나드 리에 못 미친다는 것입니다.

처음 M이 얼굴을 보일 때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M이 담배에 불을 붙이는 장면입니다.
본드가 불을 붙이려 손을 내밀지만, M은 아는지 모르는지, 본드를 무시하고 일어나버립니다.

이 장면을 통해 둘의 관계는 명확해집니다.
즉, M에겐 본드가 함부러 대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고, 본드는 M을 어려워한다는 것입니다.


6. Walther PPK


제임스 본드는 [네버다이]에서 어이상실한 Walther P99로 바꾸긴 하지만, 그래도 제임스 본드의 총이라면 Walther PPK입니다.
(결국, 그의 총은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스리슬쩍 PPK로 돌아옵니다)

이 PPK는 [살인번호]에서 처음 지급됩니다.

※ 이 총을 지급해주는 사람은 부스로이드 소령인데, Q의 실명이 부스로이드 소령입니다. 즉, Q 할아버지과 이 분은 동일인물입니다.


7. Smirnoff Vodka


본드의 술은 스미르노프 보드카입니다. 이건 [카지노 로얄] 이전까진 변함이 없었습니다.
[카지노 로얄]과 [퀀텀 오브 솔러스]에선 베스퍼라는 칵테일만 등장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군요.


8. Felix Leighter


[카지노 로얄]에서 본드와 필릭스가 서로 처음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만… 둘이 처음 만나는 장면은 [살인번호]에도 나왔습니다.

필릭스는 [살인면허]에서 상어에게 당할 때까지 총 7편의 영화에 등장하고, [카지노 로얄]로 리부팅 된 이후에도 2편 연속으로 꾸준히 등장합니다.


9. 냉혈한 킬러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의 본질적인 성격은 냉혈한 킬러란 것입니다.
이 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장면이 덴트 교수를 죽이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굳이 덴트 교수를 죽여야하는 이유가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캐릭터를 구성하는 측면에서 보면 이 장면의 의미는 명확합니다.
제임스 본드는 그저 잘 생기고 착한 캐릭터와는 거리가 엄청나게 먼, 냉혈한 킬러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