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인간은 과연 인간적인가?

평소 존경해마지않는 유명 영화 블로거 페니웨이™님 덕분에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을 시사회로 볼 수 있었다.

시! 사! 회! 아싸!


이 영화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님(105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타이트한 편집으로 지루할 틈이 없이 전개되었다.
그러면서도 곳곳에 전작들을 연상시키거나 차기작을 예상하게 만드는 코드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역시 블록버스터 시리즈물의 프리퀄이었고, 완성도가 높았던) [엑스멘: 퍼스트 클래스]와 비교했을 때, 전체적인 짜임새는 [퍼클]에 비해 근소하게 높다고 생각되고, CG를 포함한 화면빨은 [퍼클]에 비해 훨씬 높다고 생각된다.

탈출 및 각성이라는 진부할 수도 있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잘 그린 이 작품은 아마도 올해 최고의 흥행작이 되지 않을까한다.

기타 영화를 보면서 느낀 단상들…


1. 인간은 과연 인간적인가?

원작 소설 <The Planet of Apes>은 인간사회 자체를 풍자한 소설이다.
이 영화에서는 소설처럼 깊이는 다루지 않지만[각주:1], 그 풍자의 핵심인 "인간은 과연 인간적인가?"를 여러모로 다룬다.

특히, 유인원 우리에서 로드니를 죽이지 않고 어깨를 잡으며 가두는 장면은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2. 지금이라도 제목을 바꾸면 안 되겠니?

잘 알려져있다시피, 원작의 제목은 <유인원 행성>이다.
이게 어쩌다보니 <혹성탈출>이 되었는데, 일단 혹성이란 단어가 우리말[각주:2]이 아니라 일본어라는 치명적 오류가 있다.

게다가, 이번 작품에선 아예 탈출 같은 건 나오지도 않는다.
이번 기회에 제목을 바꿨으면 어쨌을까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홍보 효과 면에서 꽝이라 바꿀 리가 없음)

원제를 직역하면 <유인원 행성의 기원>인데, 이 편이 작품에 훨씬 잘 어울린다.



3. 유인원의 동작을 연기한 앤디 서키스 등의 몸연기는 압권

주인공인 시저 역은 앤디 서키스가 몸연기를 했다.
다른 유인원들도 그럴싸했지만, 특히 시저의 움직임은 하나하나가 압권이었다.

지능이 인간을 상회하는 설정의 시저를 딱 그런 느낌이 나도록 연기했다.
 
그의 몸연기는 Weta의 최고 수준의 CG 능력과 합쳐져서 완벽에 가까운 캐릭터를 보여준다.



4. [유어아이즈온리]를 연상하게 만든 장면

영화 곳곳에서는 다른 영화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나온다.
무엇보다 [킹콩]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기는 하지만, 등장인물을 생각해보면 어쩜 당연한 것이고…
내가 주목한 것은 [유어아이즈온리]를 연상하게 만든 한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왼발을 사용한다는 점까지 딱 [유어아이즈온리]의 한 장면[각주:3]과 똑같았다.

왼발!


이 외에도 역시 앤디 서키스가 CG 캐릭터를 연기한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나온다.



5. 이 영화는 어떠한 영화의 전작도 아님 

원작 [혹성탈출] 시리즈 및 2001년 리메이크 [혹성탈출] 모두 인류가 멸망하지 않은 미래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또한, [혹성탈출 2 - 지하 도시의 음모](1970)에서는 인간이 핵전쟁으로 멸망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엔딩에서는 인류가 핵이 아닌 다른 이유로 멸망한다는 암시가 등장한다.
그 내용이 없어도 전개에 아무런 무리가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원작들과 의도적으로 선을 긋기 위한 장치라 생각된다.


6. 전작들을 연상하게 만드는 것들 (imdb trivia 참조)

이 영화에는 전작들을 떠올리게 하는 여러가지 코드가 등장한다.

- 연구센터의 우두머리의 이름은 스티븐 제이콥인데, [혹성탈출] 시리즈의 제작자인 아더 제이콥에서 따온 것임.

- 시저의 엄마의 이름은 빛나는 눈(Bright Eyes)인데,
   [혹성탈출]에서 유인원 자이라가 테일러에게 붙여준 이름이 Bright Eyes임.

- 유인원 우리에서 시저의 친구(애인?)가 되는 오랑우탄 이름은 모리스인데,
  [혹성탈출]에서 유인원 원로 자이어스 박사를 연기한 배우 모리스 에반스에서 따온 것임

- 유인원 중 짱을 먹는 고릴라의 이름은 벅인데,
  [혹성탈출]의 자이라의 조카 줄리어스를 연기한 배우 벅 카르탈리언에서 따온 것임

- '미스터 말포이' 톰 펠튼이 연기한 찌질이의 이름은 닷지 랜던인데,
  [혹성탈출]에서 테일러(찰턴 헤스턴)의 우주선 동료인 닷지와 랜던에서 따온 것임

- 닷지 랜던의 대사 중 다음 두 대사는 [혹성탈출]에서의 테일러의 유명한 대사임
   "It's a madhouse! A madhouse!", "Take your stinking paws off me you damn dirty ape!"

- 제이미 해리스가 연기한 심약한 유인원 관리인의 이름은 로드니인데,
   유인원 연기의 달인 로디 맥도웰에서 따왔음. [혹성탈출] 1, 3편에서는 코넬리우스, 4편에서는 시저 역을 맡은 분임.

- 2001년 작에 이어 이번 작품에도 찰턴 헤스턴은 등장함.
   로드니가 티비를 보는 장면에서 찰턴 헤스턴이 모세를 연기하는 장면을 볼 수 있음.

- 시저가 자유의 여신상 퍼즐을 다루는 장면이 나옴.
   두말 할 것도 없이 [혹성탈출]의 그 장면을 연상시키는 장면임.

- 시저의 첫 대사는 [혹성탈출] 3편에서 알도가 처음 말했다고 언급되는 그 대사임.


  1. 소설에선 유인원이 인간에게 다양한 뇌수술 실험을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뇌가 유인원과 가장 유사하기 때문임 [본문으로]
  2. 우리말로는 행성이 올바른 표현임 [본문으로]
  3. 로저 무어 경이 주연을 맡은 007 영화 전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