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오브 솔러스]: 소설에 다가가려 노력한 007 영화

스포일러가 조금 있는 리뷰입니다.
아직 관람을 하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제목

영화와 주제곡 모두 처음부터 이상한 점이 있는데,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일단, 퀀텀 오브 솔러스(Quantum of Solace)라는 제목은 조직의 이름이 퀀텀이란 점을 제외하곤 영화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또한, 주제곡 Another Way To Die라는 제목 역시 이 영화의 주제곡 제목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생뚱맞습니다.

굳이 끼워맞춘다면 도미닉 그린이 본드가 생각하지 않는 방법으로 죽었다는 뜻일까 몰라도 말이죠.



2. 건배럴씬


처음부터 당황을 한 것이 [퀀텀 오브 솔러스]의 오프닝에서 [카지노 로얄]과 마찬가지로 건배럴 씬으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카지노 로얄]은 아직 제임스 본드가 00 요원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자 마자 즉, 2명을 제거하자마자 건배럴 씬을 보여주어, 건배럴 씬은 007 제임스 본드의 상징이란 의미를 부여한 직후라 다소 모호합니다.

아마도 사적인 복수나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등 성격 형성 과정이 완료되고 나서야 진정한 제임스 본드라는 뜻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3. 주제곡


이번 [퀀텀 오브 솔러스]의 주제곡은 역대 007 영화의 주제곡 중에서 뒤에서 순위권이란 생각이 많이 듭니다.
멜로디도 그렇게 몰입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특히, "워어어어~"하는 부분은 "가사 쓰기 귀찮아서" 그렇게 구성했단 생각이 절로 듭니다.

게다가, 클래식한 느낌의 영화의 방향전혀 맞지 않은 느낌이란 점까지 보면 음악이 좋은 평을 받을래야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4. 악당


이 영화에서 정말 문제는 악당이 누구인지 모르겠단 점입니다.
화이트는 "We have people everywhere"라고 빈정대긴 하지만, 정작 퀀텀의 사람들은 화이트 한 명을 제외하고는 악당다운 뚝심과 끈기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내가 좀 깡다구가 있긴 하쥐


어떠한 고문에도 불지 않고 버티려는 모습의 "쫄따구" 화이트와 달리 주적인 도미닉 그린은 그저 본드랑 차 한 번 탔을 뿐인데 술술 불어댑니다.
(뭐, 이 부분 역시 너무 생략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요...)

앞부분엔 마치 그린이 퀀텀의 두목인 듯한 인상을 살짝 풍기려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제거되는 모습을 보면 그 역시 까불어대는 악당 중 하나란 생각도 듭니다.

결국 화이트는 본드와 마주치지도 않고 지나가는데, 다음편엔 꼭 다시 만나서 끝장을 보면 좋겠습니다.


5. 구성

영화의 구성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부분이 전체적으로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점입니다.
즉, 화이트를 족쳐 퀀텀이 뭔지 알아냈는데, 막상 퀀텀과의 관계는 사업 하나를 방해한 것이 전부입니다.

게다가 퀀텀이란 조직의 정체를 관객들에겐 전혀 얘기해주지 않아 오히려 드라마 쪽으론 한쪽이 비어있는 느낌도 줍니다.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보면 퀀텀을 3부작으로 만들고 이 중 2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는 이미 007 소설에서 등장했지만 영화세계에선 묻혀버린 3부작을 복귀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블로펠드 트릴로지를 이루는 <썬더볼> - <여왕폐하의 007> - <두번산다>의 구조를 보면,
1. 조직의 큰 사업을 막아내며 조직의 정체를 발견
2. 조직을 궤멸수준으로 파괴시키나, 아내가 피살당함
3. 마지막 끄나풀을 찾아내서 피튀기는 싸움을 통해 복수
의 탄탄한 구성을 갖췄습니다.

그런데, [카지노 로얄]과 [퀀텀 오브 솔러스]를 퀀텀 3부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1. 조직의 이름도 전혀 모르고 이용만 실컷 당하다가 마지막에 겨우 살아남
2. 조직의 큰 사업을 막아내며 조직의 정체를 발견
3. 조직을 궤멸수준으로 파괴시킴
의 구성을 위해 만들어진 플롯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일부 캐릭터나 구성이 낭비된 모습이 보였다는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습니다.
특히, 영국 수상 보좌관의 비서를 제거했는데, 알고 보니 요원이더라는 내용이나, 사무직인 필즈 요원이 괜히 본드와 숙면을 취한 다음 그린에게 까불다가 기름 뒤집어쓰고 죽는 내용 등은 안 들어감만 못한 장면인 것 같습니다.


6. 액션


관객분들 중에는 [퀀텀 오브 솔러스]의 액션이 지루했다는 평도 있더군요.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댄 브래들리가 촬영한 아날로그 액션은 스피디하고, 초반부 액션들은 숨쉴 틈을 주지 않고 배치되어 몰입감을 최대한 높여줬습니다.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의 스턴트를 감독하며 보여준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흔히 최근 007 두 편과 본 시리즈의 액션을 비교하는데, 스턴트 감독이 같은 분입니다. ^^;;;)

하지만, 문제는 전체적으로 드라마와 조화가 잘 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앞부분에 쉴새 없이 액션을 몰아치다 다시 드라마로 넘어간 뒤에도 가끔씩 액션을 보여주어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배치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엔딩 직전에 베니스 액션 씬을 집어넣는 등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했던 전작 [카지노 로얄]과 비교되게, 불탄 건물에서 탈출하는 본드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이 장면은 [뷰투어킬]불난 시청 건물 탈출씬의 오마주인데, 그 장면이 무어 할아버지가 다찌마리를 소화하지 못해 삽입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후반부에 힘이 빠진 원인 중 하나라고 판단됩니다.


7. 클래식 및 소설의 귀환



전술했던 강력한 악당 트릴로지 외에도 본드의 아이콘인 월터 PPK, 친구의 죽음에 대한 복수 등 이번에도 많은 부분에서 클래식한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흔적이 보입니다.
특히, 르네 마티즈는 원작에서의 필릭스 라이터를 대신하여 희생됨으로서 복수에 더욱 민감해지는 제임스 본드의 캐릭터 완성에 일조하리라 봅니다.

또한 영화 속에서 계속 등장하지만, 직책이나 근무지를 도통 알 수 없었던 필릭스 라이터가 적절한 근무지와 직책을 부여받는 것은 핵심 캐릭터의 입체감과 현실감을 키우는데 일조합니다.
(소설에서는 2번째 작품인 <죽느냐 사느냐>에서 상어에게 물어뜯깁니다. ㅡㅡ;;;)

한편으로, 약간이나마 정치적 이슈를 끌어들인 점 역시 소설 속의 제임스 본드와 비슷해지려는 노력입니다.
(걸작 007 소설 <위기일발>은 사실 영국 MI6와 소련 KGB의 피튀기는 한판 승부였습니다. 정치적 중립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말이죠.)


8. 오마쥬

[퀀텀 오브 솔러스]는 여러 007 영화의 장면을 오마주했는데, [어나더데이]삽질 패러디와는 달리 적절히 품위있는 오마주를 보여줍니다.
뭐, 전술했던 [뷰투어킬]의 오마주는 좀 실망이긴 했지만 말이죠.

대략 [위기일발], [골드핑거], [나를 사랑한 스파이], [문레이커], [뷰투어킬], [리빙데이라이트], [살인면허]의 7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문레이커]의 오페라장 대결, [뷰투어킬]의 화재건물 탈출, [위기일발]의 보트신 오마주 장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