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글 : 두음법칙은 정말 필요한 것일까?

두음법칙... 학교 다닐 때 "우리말의 특성"이며, "발음의 효율성", "언어의 경제학" 등의 갖가지 핑계로 마치 절대법처럼 군림하던 법칙입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말을 좀 더 잘 알게 되면서 이 법칙의 불필요함과 법칙이라 부를 수 없을만큼의 불규칙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과연 두음법칙은 정말 필요한 것일까요?

1. 법칙이라고 부를 만큼의 일관성이 없습니다.
    녀(女) → 여자(女子) 로 변하고, 남녀(男女)로 변하지 않는다는 규칙성이 있다는데,
    그렇다면... 신여성(新女性)은 뭘까요?

2. 발음의 효율성이라면 순수한 한글이나, 영어 등의 외래어에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는데,
    일부 한자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최소한 한글 단어에서는 적용되어야 효율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 일제시대때 분들 보시면 라디오 → 나지오 로 발음하시는 분들 많습니다.
    즉, 발음의 효율보다는, 발음 기관의 성능 부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3. 컴퓨터에서 같은 글자를 다른 코드로 표현하게 됩니다.
    이 좋은 정보화시대에 같은 글자를 다른 코드로 표현하게 됩니다.
    물론, 이 부분은 법칙 자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女), 녀(女) 같은 한자이나, 다른 코드로 표현됩니다. 결국은... 혼란스럽습니다.

4. 우랄 알타이 어족 특성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어떠한 언어가 그런 특성을 가졌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이런 법칙이 적용되는 나라는 대한민국(남한) 밖에 없습니다.
    일본은 그냥 단어가 모자라기 때문에 법칙이라고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북한에서도 이따위 법칙은 없습니다.

아래 글은 southsta님의 블로그 "한국의 두음법칙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퍼온 글입니다.
제 짧은 주장보다는 분석적으로 글을 잘 적어놓았습니다.

들어가는 말

우리말 자음 중에는 거센소리나 된소리도 아니면서 유난히 만나기 어려운 소리, 이 소리로 시작하는 낱말을 들으면 십중팔구 외래어일 것 같은 소리가 있다. 바로 ㄹ 소리이다.

ㄹ 소리가 이렇게 희귀해진 것은 이 소리가 낱말의 첫소리로 시작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두음법칙이라는 규범이 우리말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 대해 우리는 국어 선생님들로부터 “ㄹ은 발음하기 힘드니까”, “소리가 불안정해서 ‘종로’에서처럼 자주 음가를 잃는다”, “우랄 알타이 어족 말글들은 두음법칙을 가지고 있다” 등의 설명을 들어 왔다.

그러나 나는 우리말 외에 두음법칙을 가진 말글을 지금까지 전혀 접하지 못했으며, 선진국의 말글들은 음향도가 뛰어나고 듣기에 아름다운 ㄹ 소리를 오히려 활발하게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ㄹ로 시작하는 낱말이 오히려 고어라고 되어 있는 사전 뜻풀이를 보면, 옛날부터 ㄹ 소리가 이 정도로 천대받아 왔는지도 의구심이 든다.

유성음 받침 사이에서 ㄹ은 음가를 잃는 경우도 있지만 ‘솔잎’처럼 덧나서 살아나는 경우도 있으며, 더구나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외래어가 우리말에서 쓰이는 보기)를 볼 때, 우리는 ㄹ 소리를 적고 발음하는데 조금도 불편을 겪고 있지 않다. 이에, 이 글에서는 두음법칙이 그 태생부터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도리어 발음은 물론 표기에까지 영향을 끼침으로써 우리 말글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있음을 논증하고자 한다.


두음법칙은 한자어와 토박이말을 갈라 놓는다

두음법칙은 아무 상황에서나 적용되는 게 아니라 한자어에만 적용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이것뿐인가? 우리말글규범에는 한자를 즐겨 쓰는 사람이나 한자어를 잘 아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것을 적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오로지 한자어에만 달리 적용되기 때문에 한자어를 알아야 익힐 수 있는 법칙, 좀 까놓고 말하면 우리말에 한자어 영역이라는 독자적인 철옹성을 치고 싶어하는 법칙이다.

과연 그 철옹성이 필요한가? 언젠가 ‘유아틱하다’란 표현을 보기)로 들며 외래어 때문에 병들어 가는 우리말을 걱정한 글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유아틱(-tic)하다’는 안 되고 ‘유아적(的)이다’는 괜찮은 것일까? ‘적’이라는 한자 자체가 브리튼어 접미사를 치나에서 음역한 글자인데 말이다. 우리말 사랑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우리말 사랑이며, 그 범위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다른 보기)로, 먼저 인명의 표기를 살펴보자. ‘김 용묵’, ‘도요토미 히데요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빌 클린턴’ 등 세계 어느 나라 사람 이름이라도 성과 이름을 띄워쓰고 각 말글이나 문화에 따라 쓰는 순서만 존중해 주면(우리도 이름은, 로마자로 쓰더라도 반드시 성부터 먼저 써야 한다.) 일관성 있고 좋을 텐데, 치나나 니혼처럼 띄어쓰기 없이 한자로 붙여 쓰는 사람들 취향에 맞게 성과 이름을 붙이는 걸로 맞춤법이 바뀌어 버렸다. 그 결과 ‘황 보율’이나 ‘황보 율’처럼 혼동이 생길 수 있는 경우 또다시 띄어쓰기를 허용한다는 얼치기 예외가 생기고, ‘이 루리’, ‘최 하얀’처럼 낱말 단위로 구분이 돼야 말맛이 나는 순우리말 이름을 짓기가 훨씬 불편해졌다.

둘째로, 한자어의 사이시옷 표기를 여섯 개의 예외만 인정하고 모조리 없앤 것도 한자어가 ‘곳간’, ‘숫자’처럼 토박이말로 자연스레 동화하는 것을 막고, 말과 글 사이의 이질감을 초래하여 한글의 변별력을 떨어뜨린 처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발음이야 어떻든 한자음만 잘 드러나게 맞춤법을 만든 덕분에 ‘솟수’(2, 3, 5, 7)가 ‘소수’로 들어가 버리고 소리까지 엄연히 다른 ‘댓가’가 전문가를 뜻하는 ‘대가’로 흡수돼 버렸다. 사잇소리 문제는 한글 표기법에서 대단히 어려운 숙제임이 틀림없지만, 그 어려운 문제를 한자나 한자음만으로 덮어 버리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며,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다.

끝으로, 저 철옹성에서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버티는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걸고 늘어지는 레퍼토리가 있는데, 왜 외국 한자 고유명사를 우리 식으로 안 읽냐는 것이다. ‘북경’, ‘동경’ 대신 ‘베이징’, ‘도쿄’라 읽는 사람들을 줏대 없는 사대주의자로 매도한다. 소리글자인 알파벳조차도 쓰는 나라마다 다르게 읽히는데, 왜 한자는 그걸 인정 안 하는 걸까? 우리가 평소에 알파벳을 유엣에이 식으로 읽으니까 독일의 고속 철도 이름도 꼭 ‘아이스’라고 읽어야 주체적인가? 브리튼어의 ABC(에이 비 씨)와 독일어의 ABC(아 베 체)가 다른 것처럼, 편견을 버리고 차라리, ‘國’과 ‘国’은 뜻만 같지 소리와 쓰이는 상황은 서로 완전히 다른 글자라고 여기고 사는 게 외국어를 공부하는 데도 더 나을 것을!

앞에서 제기한 우리말과 맞춤법의 모든 문제들이 바른 길, 원칙을 무시하고 당장 쓰기 편한 꽁수를 쓰려 한 대신 얻은 댓가이다. 한글 표기법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는, 이래서 한글로만 쓰면 뜻이 변별 안 되고 불편하니까 한자를 섞어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얄팍한 속임수가 가소롭기만 하다.

두음법칙 역시 한자어 우대를 전제로 하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한자어와 비한자어의 구분에다가, ㄹ도 모자라 ㄴ과 이중모음 구분까지 요구하는 두음법칙은 된소리되기나 자음동화처럼 필연적인 음운 현상도 아니고 단지 몇몇 한자어를 입만 뻥긋하면 낼 수 있는 소리로 만들려는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한글과 우리말의 성능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면서 말이다. 한자어는 꼭 이렇게라도 티를 내야 하겠는가?


표기법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

두음법칙은 ‘리성’이라고 쓰고, 읽는 것만 ‘이성’을 허용하는 게 아니라 표기법까지 바꾼다는 점에서 폐해가 더욱 심각하다. ‘국력’이라고 쓰면 사람들이 ‘궁녁’이라고 어쩔 수 없이 저절로 읽게 돼 있지만, ‘리성’이라고만 쓰면 ‘이성’으로 읽기 어려우므로 숫제 표기법까지 바꿔 버린 것이다. 이 사실은 그만큼 두음법칙이 당위성이 떨어짐을 입증하는 보기)가 될 수 있다.

두음법칙은 국어사전의 어휘 배분에도 커다란 불균형을 초래했다. ㄹ에는 낱말이 전멸하다시피 하고 외래어만 자리를 잡고 있는 반면, ㅇ에는 어휘가 너무 많다. 그 덕분에 정작 한자도 처리하기가 더욱 불편해졌다. 소리가 ‘리’인 理와, ‘이’인 理가 제각기 다른 코드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유니코드에 “한중일 통합 한자” 외에도 “호환용 한자” 영역이 또 있는 까닭도 이것 때문이다.

양산(陽傘)과 량산(量産), 이론(異論)과 리론(理論), 역학(易學)과 력학(力學) 등, 두음법칙은 그렇지 않아도 넘쳐 나는 한자어 동음이의어에다가 우리 말소리와 한글만으로 충분히 변별이 가능한 동음이의어까지 쓸데없이 만들어 냈다. 소리가 바로 의미로 대응하지 않아 전국민이 사고 과정에서 입는 부담과 피해를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 동음이의어뿐만이 아니다. 두음법칙의 영향 때문인지, 원래 ㄹ 소리가 존재하지 않던 한자인 諾에 대해서도 ‘허락’과 ‘승낙’ 같은 쓸데없는 예외가 생겨나 우리말의 기능성과 논리성이 떨어지고, 많은 국민들이 예외투성이의 어려운 한글 맞춤법에 좌절하게끔 만들었다.

그런데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하다. 두음법칙이 진짜 직격탄을 때리는 상황은 고유명사나 약어를 표기할 때이다. 신문, 방송이 ‘룡천’과 ‘용천’을 제각각으로 적는 것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더 오래 전엔 어느 ‘류씨’ 가문이 호적에서 자기 성을 되찾기 위해 소송까지 벌인 사건이 있었다. 두음법칙이 멀쩡한 사람 성까지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외자 이름 같은 경우도 ‘신 입’이 맞는지 아니면 ‘신 립’이 맞는지, ‘채 윤’이 맞는지 ‘채 륜’이 맞는지, 맞춤법이 바뀐 뒤에 나온 책들도 표기가 제각각이다. 이런 보기)들 중 어느 게 맞는지를 따지며 옥신각신하는 게 과연 우리말에 생산적인 활동인가?

‘소련’은 ‘소비에트 연방’의 줄임말이고, ‘양산’은 ‘대량생산’의 줄임말이다. ‘민주노동당’을 ‘민로당’으로 줄여 쓰고 ‘남자여자’를 ‘남녀’라고 쓰는 걸 보면 합성어에서는 두음법칙이 일관성 있게 비켜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신여성’, ‘남존여비’, ‘분노’, ‘희로애락’ 같은 낱말은 어찌 설명할 것인가? 한자어는 그렇지 않아도 글자 하나가 낱말의 성격을 띠고 있어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단위인 낱말 경계를 구분짓기 매우 힘들다. 이 경우를 어떻게 봐야 좋겠는가?


두음법칙은 이제라도 없애야 한다

음성학에서 ㄹ과 같은 소리는 流라는 한자를 써서 ‘유음’이라고 분류한다. 하지만 나는 두음법칙을 반대하는 학자가 쓴 책으로부터 이 낱말을 ‘류음’이라고 맨 처음 접했기 때문에, 지금도 ‘유음’보다 ‘류음’이 듣기에도 더 좋고 먼저 와 닿는다. 읽고 쓰는데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두음법칙에 의해 말글감각이 왜곡되지 않은 깨끗한 상태에서는 누구라도 ㄹ 소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ㄹ은 자음이면서도 모음의 성향을 띠고 있으며, 음향적 쾌감이 가장 높아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든가, “얄리 얄라얄라 얄라셩 얄라리 얄라” 등 노래 가사에서 운율을 넣는데도 즐겨 쓰인다. 요들송은 유음 사용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음성학을 맛본 사람이라면 이 소리의 소중함을 알고, 정당한 까닭 없이 모국어에서 이 소리를 말살하는 말글규범에 대해 마땅히 비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 사람이 혀가 짧아서 ㄹ 소리를 못 내기라도 하는가? 아니면 한글이 이 소리를 제대로 받아 적지 못하기라도 하는가?

‘맥도날드’, ‘빌딩’조차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마구도나루도’, ‘비르딩구’라고 적고 발음하는 니혼어를 생각해 보라. 그런 니혼 사람들도 ㄹ 소리는 조금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그대로 발음하고 있다. 우리가 ‘노력, 이론, 윤리, 노령’ 등 ㄴ이나 ㅇ으로 바꿔 발음하는 한자어도 니혼어로는 ‘로료꾸, 리롱, 린리, 로레이’이다. 어느 나라 말이 더 아름답게 들리며, 어느 나라 말이 더 밋밋하고 투박하게 들리는가? 우리가 니혼 사람보다도 게을러서야 되겠는가?

오래 전부터 남한보다 더 철저하게 한글전용을 시행한 북한은 아직도 머릿소리 ㄹ을 그대로 발음하고 있으며, 두음법칙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장차 남북이 통일되어 통일 맞춤법과 말글규범을 정할 때, ㄹ을 처리하는 방식은 남한이 기꺼이 북한 방식에 양보해야 할 것이라고 여긴다. 혀의 자그마한 편의를 수용한 대신 잃은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ㄹ을 그대로 표기하되 발음만 변형을 허용함으로써 두음법칙 문제를 표기법 차원이 아니라 좀더 가벼운 소리 차원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법칙’이라는 용어도 단순한 현상을 나타내는 ‘되기’로 고쳐, ‘두음법칙’ 대신 ‘머릿소리되기’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 두음법칙을 당장 없애면 잠시 많은 낱말들의 표기를 바꿔야 하는 불편이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 결국 우리 말글살이는 일관성이 살아나고, 그 효율도 시나브로 높아질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덧글》
한자세대와 한글세대는 아주 또렷한 의식과 문화의 차이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이젠 궁극적으로 한글세대들이 문화를 이끌어 갈 것입니다. 언어중추를 자극할만한 글자를 배우지 못했는데 어떻게 풍부한 발음을 하겠습니까. 얼마전 유명한 "데뚬"을 한글로 하는 사업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떼뚬어에는 모음이 [아 .으 .이] ..... 세 개 밖에는 안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같은 동•티모르 사람이라도 알파벳을 배운 사람들은 모든 발음을 다 한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알파벳(한글,로마자)이 사람들의 언어중추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는 돌이킬 수 없는 증거 입니다. 두음법칙이란 한글이 없었던(있어도 쓸줄 몰랐던 니혼제국 시기)시절에 생긴 그저그런 말버릇에 불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무슨 중대한 말글규칙이라도 되는냥 받아들인 게 초기 한글학자들의 큰 실수 였다고 봅니다. [두음법칙]은 자연 발생적이 아니라, 올곧은 알파벳이 " 있거나/없거나"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리고 남한은 첫단추를 두음으로 꿰었고, 북한은 있는 그대로 한글 발음능력을 받아들였을 뿐 입니다.

[한글세대]와 [니혼인/한자세대]의 언어중추는 연구할 가치가 있다.
내가 경험한 [라이터]를 [나이타]라고 발음하는 사람들은 한글공부도 올바로 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두음법칙은 쓸만한 글자(한글)가 없었기에 생긴(니혼제국의 영향이 큼) 그저그런 말버릇에 불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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