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7 영화를 유작으로 남긴 페드로 아르멘다리즈 이야기
- 미디어이야기/James Bond 007
- 2008. 5. 13. 15:18
암의 고통을 견뎌내며 촬영에 임하는 페드로 아르멘다리즈(오른쪽)
존 웨인이 주연한 영화 [정복자 징기스칸(The Conqueror/1956)]은 유타 사막의 핵폭발 시험 구역 주변에서 촬영되었는데, 결국 영화 촬영시 자리에 있었던 220명 중 (존 웨인을 포함한) 91명이 암에 걸렸고, 이 중 절반이 암 또는 암과 관련된 이유로 사망했습니다.
[위기일발]에서 제임스 본드를 도와주는 터키 지부장 케림 베이를 연기한 배우는 페드로 아르멘다리즈(Pedro Armendáriz)입니다.
이 배우는 멕시코 혁명기인 1912년에 멕시코에서 태어나 양친이 (그가 9살이던) 1921년에 사망하여 삼촌 손에서 자라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1940년 경 영화감독인 미구엘 자카리아스에게 발탁되어 영화배우 인생을 시작합니다.
이후 그는 멕시코 영화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배우로 활동하고, 멋진 초록색 눈동자와 함께 근육질 꽃미남의 원형을 확립하는 등 영화계에서 커다란 명성을 쌓아나갔고, 멕시코 영화 외에도 헐리우드 영화에도 종종 등장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그를 비롯한 많은 배우들과 스탭들에게 생명의 위기를 가져다 준 작품으로 악명높은) [정복자 징기스칸]에 출연하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징기스칸(존 웨인 분)의 어릴적 친구이고, 이후 그를 배신했다 처형당하는 자무가(Jamuga/찰목합/札木合) 역을 맡아 열연했는데, 결국 암에 걸린 91명 중 1명이 되었습니다.
그가 암의 발병사실을 안 것은 [위기일발] 촬영 전이었습니다.
그는 이 작품이 그의 유작이 될 것을 알고 있었으며, 유족에게 생활비를 남기기 위해서 계약서에 사인을 합니다.
그는 엄청난 고통을 견디면서 촬영에 임하게 되지만 결국, 촬영 후반부에 가서는 대역을 사용하여 촬영하거나, 그를 위해 촬영 스케쥴을 조정하는 등의 힘든 과정을 거쳐서야 1963년 5월에 그의 촬영분에 대한 촬영을 겨우 마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다음달인 6월에 총으로 자살합니다.
그런데, 페드로 아르멘다리즈가 자살하기 2년 전인 헤밍웨이가 총으로 자살하는 일이 있었는데, 사실 페드로와 헤밍웨이는 친구 사이였습니다. 죽는 방법도 공유한 친구라고 해야 할까요?
1899년에 태어난 어네스트 허밍웨이는 1954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는 등 문학계에서 커다란 영광을 누렸지만, 1961년 샷건으로 자살하여 생을 마감했습니다.
덧. 이후 그의 아들인 페드로 아르멘다리즈 주니어(Pedro Armendáriz Jr.)는 [살인면허(1989)]에서 월급쟁이 대통령 헥터 로페즈 역을 맡아 부자가 나란히 007 영화에 출연하는 기록을 남깁니다.
산체스 씨, 내 월급 왜 깎았냐구요… 난 대통령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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