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정말 "동방예의지국"이었을까?

예의禮儀〔-의/-이〕 [명사] 사회생활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예로써 공손하게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녜의-/-녜이-〕 [명사] [예의를 잘 지키는 동쪽의 나라라는 뜻으로]
        예전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이르던 말.

약 2300년 전에 공자(孔子)의 7대손 공빈(孔斌)이 고대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서 쓴 [동이열전](東夷列傳)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 나라는 비록 크지만 남의 나라를 업신여기지 않았고, 그 나라의 군대는 비록 강했지만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풍속이 순후(淳厚)해서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먹는 것을 서로 미루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섞이지 않으니, 이 나라야말로 동쪽에 있는 예의바른 군자의 나라(東方禮儀君子之國)가 아니겠는가?

동이열전 좀 더 보기..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먼저 먹겠다고 나서지 않고, 남녀가 따로 거처하는 것을 예의라고 표현했는데, 지금의 개념으로 생각해보면, 타인을 배려하는 풍속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썼다는 공빈이 공자의 후손임과 공자의 유교사상을 생각하면 남녀에 대한 언급은 좀 복잡할 것 같아 패스~)





그런데, 예전부터 어른들이 가르쳐주신 것들을 곰곰 생각해보면 예의가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상처주는 행위가 예의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가르치거나, 아무런 상관 없는 것을 예의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여기 그 중 3가지를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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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애인

어릴 때 동네마다 장애인이 한 명씩 있었습니다. 다리가 한 쪽 없거나, 판단력이 좀 약하거나…
전쟁터에서 장애를 입은 분들도 많았습니다. 6.25나, 베트남전에서…
여담이지만, 6.25를 한국전쟁이라고 많이들 부릅니다. 이것은 미국에서 Korean War라고 하는 것을 그대로 번역하는 것인데, 옳지 않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참전한 한국의 전쟁은 6.25동란밖에 없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아니거든요…

많은 부모님들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병신"이라고 부르고, 자식들을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한 가르침이 예의바른 것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이었을까요?


2. 공사판 노무자

공사판 옆을 지나가면 열심히 일하는 아저씨들이 있습니다. 모래를 체로 치고, 철근을 나르고, 꺾고…
위험한 공사판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이 아저씨들이 아니면 63빌딩도 없고,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옆을 지나갈 때 많은 부모님들이 꼭 한 마디씩 하셨습니다.
"너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커서 저렇게 된다!"
그것도 그분들 다 들리게 말이죠. 자식들에게 그 얘기를 하는 것인지 공사판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예의바른 것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이었을까요?
게다가, 그 얘기는 예의를 떠나서 옳은 가르침이 아닙니다.
(제 주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방학 동안 용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학생부터, 사업에 실패해서 다시 시작하려는 분들, 전문 기술을 갖고 일하시는 미장공 여러분들이 그 곳에서 땀흘려 일하고 계십니다.
물론, 대학교에서 관련 교육을 받고 현장 감독관으로 일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게다가 그 분들중 상당수는 또 누군가의 부모님이십니다.


3. 왼손잡이

초등학교 때 반 친구 중에 왼손잡이가 있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김병조 씨의 '지구를 떠나거라'를 정말 똑같이 따라하는 재미있는 친구였습니다)
이 친구는 방과 후까지 남아서 선생님과 함께 바른손으로 글 쓰는 법을 익혀야 했습니다.
못 쓴다고 혼나가면서 말이죠.
왼손으로 밥을 먹고 글을 쓰는 행위가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기 때문이랍니다.
그것은 예의바른 것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이었을까요?


많이들 공감하실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아니시라면… 부럽습니다.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자라셨습니다)
예의라는 것, 그렇게 특별한 것 아닙니다. 좀 더 남을 배려하고, 남의 입장을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교육은 거의 없었고, '예의란 어른들 말 잘 듣는 것. 끝!'이라고만 가르쳤었습니다.

(실컷 말을 벌려놓고는 수습이 잘 안되는군요)

서로를 좀 더 배려하며,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불편한 사람들의 입장을 조금만 더 이해하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어떤 사안에 대한 비판이나 나아가서 비난은 그런 배려나 이해를 한 뒤에 해도 늦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덧글. 국개론이라는 말만 듣고 찾아보지는 않았는데, 마침 w0rm9님께서 정리해놓은 자료를 링크해주셔서 읽어보니 왠지 공감이 가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거기엔 거북한 표현이나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 읽지 않기를 권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동방예의지국"에 대한 부분은 상당히 와닿았습니다.

도덕은 뭣처럼 알고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