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감독의 영화 [이끼]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윤태호 작가의 만화 <이끼>를 영화화한 것이다.
그리고, 역시 잘 알려져있다시피 영화는 만화의 일부 내용을 제거하고, 나머지를 거의 그대로 담았다.
되었다는 거.
이 영화는 강우석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영화다. 이 영화에서
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원작에서 변형되거나 제거된 설정을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1. 이영지를 강간 폭행한 범인은 4명이 아니라 3명
영화에선 남자 4명만 범인으로 나오지만, 원작에선 남자 2명, 여자 1명이다.
여자라고 그녀를 보호해주진 않는다. 오히려 아이의 아빠라는 증거를 대라며 미친듯이 몰아붙인다.
이 과정에서 이영지는 중요한 현실을 하나 배운다. 증거가 없으면 패해자가 피해자 대접을 못 받는다는 거.
만화에서는 이게 결국 작품의 엔딩과도 연관이 되는데, 그 부분이 통째로 잘려나갔다.
덕분에 이영지는 원작의 모호한 캐릭터와는 달리, 상처받은 악당으로 캐릭터가 단순화되어버렸다.
2. 기도원 살해에는 류목형, 천용덕, 이영지 가 모두 관련됨
영화에선 모호하게 그려지고, 은근히 이영지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별로 쓸데도 없는) 모호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류목형이 청산가리로 살해할 것을 요구하고, 천용덕이 칼로 살해한다.
그리고, 이영지는 뒷처리를 담당한다.
또한, 류목형은 아내에게 신도들이 피를 흘린 기도원 바닥을 걷게 하는데, 이것으로 인해 류목형과 가족들이 단절된다.
3. 마을의 시작이자 끝인 이장을 만든 류목형에 대한 설명이 없음
진석만은 "마을의 시작과 끝이 이장님이라면 그 이장님을 만든 사람이 있지 않을까"는 대사를 한다.
이 대사는 원작에도 나오며, 그 사람은 당연히 류목형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원작과는 달리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등장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몰아간다는 거.
장난하냐? 강우석?
4. 김덕천의 정신병은 심각한 수준이었음
유해진이 연기한 김덕천은 영화에서 보기엔 보통사람 수준이었다. 분위기 파악만 약간 못하는…
하지만, 원작에선 계속 할머니의 환영을 보는, 그래서 약을 계속 먹어야하는 캐릭터이다.
그래서, 죽기 전에 모든 것을 술술 부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영화에선 글쎄… 멀쩡한 사람이 딱 그 때만 미친 척하는 어이없음이라니!
5. 이영지는 류목형을 죽인 범인이 아님
원작 팬들에게 가장 많이 욕듣는 장면인 엔딩.
원작에선 류목형은 자연사하는 것으로 나오며, 이 장면은 극초반(1화)에 등장한다.
그리고, 류해국은 처음엔 부친의 사인에 대해 (쓸데없이) 의심하다가 점점 마을 전체를 의심하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영지가 류목형을 죽인 범인으로 설정이 바뀌었다.
그리고, 이 변화를 그럴싸하게 묘사하기 위해 류해국이 포기하려고 할 때 이영지가 등을 떠밀도록 바뀌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원작을 제대로 변형한 것으로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6. 류해국에게 부친 류목형의 죽음을 알린 것은 이장 일행임
영화에서는 이영지가 죽음을 알리고, 이장은 모르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원작에선 이장 일행이 알린다.
이 부분은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변형이다.
마을의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으며 쥐고 흔드는 이장이 자기 허락없이 죽음을 알렸다면 이영지를 그냥 놔뒀리가 없다.
이장은 류해국 좀 도와줬다고 이영지의 싸다귀를 계속 날리지 않았는가!
7. 류해국이 남기로 한 이유가 나오지 않음류해국이 마을에 남기로 한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회사에서도 짤리고, 가족한테도 버림받고… 도시 생활 자체가 싫어진 것이다.
그런데, 시골에 와보니 다들 자기보고 떠나라고 난리인 거다.
하지만, 영화에선… 글쎄… 왜 남으려 했지?
8. 류목형의 땅을 이장에서 넘긴 것은 류해국임
7번과 연결되는 내용인데, 류목형의 땅은 이장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다.
이장은 일처리가 살벌하게 깔끔한 인간이다. 뻔히 아들이 있는 걸 알고 있고, 분쟁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데, 땅의 소유권을 몰래 자기에게 돌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
(영화에도 나오듯이 땅을 빼앗을 땐 본인이 도장을 찍게 만들었다.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원작에서는, 류해국이 시골에 와서 류목형의 재산을 다시 정리한 뒤에 자기 소유가 된 땅들을 확인했고 이 중 돈이 될 땅을 직접 이장에게 넘긴다.
시골에서 정착하기 위해서다.
9. 박민욱은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이 붕괴됨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변형이 바로 류해국과 박검사의 관계다.
원작에서는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박검사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는 잘 나가는 집안의 검사였다. 사업하는 동생, 의사 사위 등.
하지만, 동생의 사업은 실패하고 이 과정에서 집안이 붕괴되기 시작하며, 본인은 좌천되고, 이 상태에서 부인이 이혼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박민욱과 류해국은 결코 웃으면서 만나고 얘기할 사이가 아니며, 계속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사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냥 죽자고 싸워야 될 사람들이 친하게 지내게 되는… 전형적인 버디무비로 전락해버렸다.
(강우석은 아직도 관객의 수준이 [투캅스] 따위나 볼 수준으로 알고 있는 듯)
10. 박민욱이 관할검사에게 뇌물 주는 부분이 코미디로 변질 (7/21 추가)
원작에서는 박민욱이 (관할 지역이 아닌) 마을에서 마무리를 짓기 위해 상당량의 뇌물을 쓰는 것으로 나온다.
이게 정말 아이러니컬한 것이 자신과 류해국은 (아마도) 사소한 현실타협때문에 공멸했는데, 결국, 그 류해국을 구하기 위해 큰 비리를 다시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우리나라 사회 전반의 부조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장면인데, 우리의 강우석. 그딴 거 모른다.
그냥 코미디로 바꿔버렸다.
그래 강우석. 내가 너따위에게 뭘 바라겠냐? 넌 그저 표절 감독일 뿐이야.
11. 원작에는 욕설의 사용이 지극히 자제됨이장의 캐릭터는 정말로 원작과의 싱크로율이 높다. 하지만, 코믹과 욕설은 좀 아니다.
특히, 이장이 하는 욕설은 오히려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원작에서는 욕을 하지 않더라도 위트 있는 대사로 긴장의 끈을 살짝씩 늦춰주었는데, 오히려 욕이 들어가면서 긴장감 자체를 없애버리는 이상한 짓을 했다.
강우석 감독이 의도적으로 했겠지? 멍청하게 자기가 뭐 하는지도 모르고 이런 짓을 한 건 아니겠지?
역시 <이끼>는 강우석의 그릇에 맞지 않는 영화다.
이걸 제대로 영화화하려면 "봉테일" 봉준호 감독 정도는 되어야 한다. 아깝다…
덧. 만약에 이 영화의 판권을 헐리우드로 수출한다면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영화화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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