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무섭도록 차가운 스파이 영화

고등학교 다닐때 한참 추리소설과 스파이소설에 빠져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무렵 로버트 러들럼의 <본> 3부작, <아마야 아키르[각주:1]> 등과 함께 존 르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를 읽었다.

오래 전에 본 소설이라 상세한 내용들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소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느낀 그 차가움은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주인공(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는) 알렉 리머스를 적진에 보낸 그 놈들이 정말 나쁜 ㅅㄲ들이라는 생각도…

이 후덜덜하기 짝이 없는 배우들이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바로 그 나쁜 ㅅㄲ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리얼리티 스파이 영화[각주:2]다.
서커스의 수장인 컨트롤이 은퇴 직후 사망하고, 함께 은퇴한 조지 스마일리가 배신자를 찾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는 적 뿐만 아니라 때로는 아니, 종종 아군 간에도 스파이 활동이 벌어지고, 서로서로를 의심한다.
게다가, 17:1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무적의 수퍼 스파이 같은 건 나오지도 않는다.

무섭도록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범인을 찾아나가는, 진정으로 냉전의, 냉전에 의한, 냉전을 위한 스파이 영화다.

오랜만에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영화를 봤다. 아차하면 놓칠 수 있는 숨은 코드가 그득한 멋진 영화였다.

그 외 단상들…

1. 오프닝 쪽 순서는 소설과 약간 다른데, 개인적으로는 소설쪽 순서보다는 영화쪽이 더 좋았음

2. 영화 오프닝의 배경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인데, 소설은 체코 프라하임

3. 서커스의 5인방을 각각 팅커, 테일러, 솔저, 푸어맨, 베거맨[각주:3]으로 이름붙여 체스말에 붙여두었는데,
   체스말이라는 게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음

4. 새미 데이비스 Jr.의 <The Second Best Secret Agent In The Whole Wide World>가 멋지게 나옴


5. 존 르 카레 님이 등장하심.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가면 쓰고 "Everybody!"라고 소리지르시는 그 분.

John le Carré


6. 그 장면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그 유명한 소련 국가. 러시아 연방으로 바뀐 뒤에도 국가는 안 바뀐 것 같다.


7. 헝가리 부다페스트, 프랑스 파리, 터키 이스탄불 등을 돌아다니지만, 결코 이국적 분위기에 함몰되지 않음

7. 톰 하디가 연기한 리키 타르는 제임스 본드와 비슷한 현장요원이지만, 싸움은 하지 않음 ㅎㅎ

8. 배우들의 연기는 . 무표정한듯하면서도 미묘한 표정 변화를 통해 분노, 경멸, 만족 등등이 다 느껴짐 ㅎㄷㄷ

9. 팅커의 차번호판은 MMX로 시작하고, 테일러는 RBG로 시작한다. 제작진 중에 컴덕이 있는 건가?

10. 엔딩 장면 음악과 화면의 매치는 정말로 멋짐. 엔딩 장면의 음악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La Mer>


11. 소설에서는 범인이 왜 배신하는지가 설명되는데, 영화에서는 설명이 생략됨

12. 영화는 미칠듯이 차가움. 심지어는 지열로 아지랭이가 피어오르는 상황에서도 영화의 온도는 차갑기만 함

13. 발터 PPK스미르노프 보드카가 등장함. 이런 깨알같은 007의 흔적이라니!

발터 PPK!!!


14. 오프닝에서 짐 프리도를 적진에 보낸 것 자체가 컨트롤이 함정에 빠졌다는 뜻임.

15 .피터 길럼의 어떤 장면은 여러모로 [셜록]의 어떤 부분을 연상시켰음. ㅎㅎ


16. 심야로 영화를 봤는데, 영화를 따라가다 보니 잠이 달아날 정도로 짜임새가 치밀했음.

17. 이 영화의 감독은 스웨덴 판 [렛미인]의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손. 이번에도 역시 차갑고, 차가우며, 차갑다

18. 냉전시대 소련 KGB가 심어둔 스파이는 냉전시대 스파이 영화의 단골 메뉴. [노 웨이 아웃]이 참 멋있었음

19. 게리 올드만과 톰 하디는 올 여름 [닭나라]에서도 또 만남

20. 올해 개봉하는 굵직한 스파이 영화가 이 영화를 포함해서 [본 레거시], [007 Skyfall] 두 편이나 더 있음[각주:4]


덧1. 번역은 여러모로 불만이었음.
원작 자체가 번역이 힘든 작품이란 건 알겠지만, 이런 건 대체 뭐냐고!

- west서방세계가 아니라 유럽으로 번역
- unpaid bill (미납금) 이라는 말개그를 이상하게 번역
- There is as little worth on your side as there is on mine.
   "이쪽이나 그 쪽이나 그럴만한 가치가 별로 없다"
   "이 쪽에서 일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식으로 번역
- "은퇴의 증인이 되어주게." / "더 필요하신 건 없나요?"
   "은퇴의 증인이 되어주게." / "못 하겠는데요"라는 식으로 번역

덧2. 비니루 님의 글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을 읽으면 영화에 나온 장면들을 알 수 있다.
정말 이 장면들이 다 나오기는 한데… ㅋㅋㅋㅋㅋ


  1. 원제: The Scorpio Illusion [본문으로]
  2. [카지노 로열] 이후의 007 영화나 [제이슨 본] 3부작을 두고 리얼리티 스파이 물이라고도 하지만, 전혀 아니다. 그 쪽은 여전히 판타지 스파이 영화이며, 리얼리티의 껍데기를 두르고 있을 뿐이다. [본문으로]
  3. 조지 스마일리가 베거맨인데, 영화에서는 그 점은 언급되지 않았음 [본문으로]
  4. 이 영화 자체는 2011년 영화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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