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본 시리즈 : 네 시작은 오마주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본 아이덴티티본 슈프리머시는 영화로는 아주 잘 알려져있지만, 원작 소설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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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원작 소설이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르는 분들도 많습니다.

본 아이덴티티를 비롯한 제이슨 본(Jason Bourne) 3부작 시리즈는 원래 로버트 러들럼(Robert Ludlum)의 명작 소설입니다.
1980년에 첫편인 본 아이덴티티가 출판되고, 속편인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은 각각 1986, 1990년에 출판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합니다.

참고로 로버트 러들럼이라는 이 작가... 아주 유명한 스파이 스릴러 소설 작가입니다. 작품들은 2억부 이상 팔렸고, 작품들 중에는 미니시리즈나 영화로 제작된 작품도 있는 분입니다. 2001년에 작고할 때까지 29권의 소설을 출판했습니다.

그런데, 제이슨 본 시리즈는 사실 2 작품의 오마주 성격이 강합니다.
(여기부터는 제 생각입니다. 러들럼 옹께서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1. 네 시작은 오마주였으나...

작품의 모티브 즉,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목숨의 위협을 받고, 기억을 되찾기 위해 모험을 벌인다는 기본 줄거리는 William Irish(본명은 Cornell George Hopley-Woolrich)의 1941년 작 "The Black Curtain"과 동일합니다.
이 작품은 "(공포의) 검은 커튼"이라는 제목으로 몇 번 번역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작품은 뭐... 당연히... James Bond입니다.

French Woman: The coffin, it has your initials, J.B.
Bond: At the moment, rather him than me.
                                                                       - Thunderball
J.B.(Jason Bourne)는 James Bond의 이니셜과 동일합니다. 작가가 일부러 비슷한 어감을 갖도록 한 것입니다. 이유야 여럿 있겠지만, 이니셜만으로도 이 사람의 느낌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소설 중에는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James Bond의 애주인 Vodka Martini도 등장합니다.

즉, 이 작품은 The Black Curtain과 James Bond 시리즈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화된 내용은 소설과는 다소 다릅니다.
소설에서는 조직(CIA)이 그를 배신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오해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Carlos the Jackal이라는 테러리스트를 체포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기억을 잃고, 시리즈 마지막 편인 본 얼티메이텀에서 그를 사살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Carlos the Jackal은 실존하는 테러리스트입니다. 1973년에 유태인을 상대로 첫 테러를 벌인 그는 1994년에 CIA와 프랑스 정보기관의 합동작전으로 체포될 때까지 수없이 많은 굵직한 테러를 벌였으며, The Day of the Jackal(자칼의 날 / Frederik Forsyth), 자칼(자칼의 날 리메이크), Assignment 등의 영화에 악역으로 등장(?)하고, True Lies에서는 엉터리 스파이(Bill Paxton 분)를 잡을 때 자칼이라고 부르는 등, 이리저리 영화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영화에서는 조직이 임무 회피를 이유로 그를 배신하고, 더 큰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막는 설정으로 나옵니다. 영화는 리얼리티 액션을 추구하면서 스토리 플롯의 일관성을 다소 잃은 느낌이지만, 액션은 대단한 수준입니다.


2. 끝은 창대하리라...

James Bond 영화는 Pierce Brosnan의 마지막 출연작인 "Die Another Day"에서 위기를 맞이합니다.

물론, 영화의 흥행은 역대 최고였습니다. 게다가 원작 이미지와 가장 잘 맞아떨어진다는 Pierce Brosnan이 펜싱 액션 등에서는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영화 초반에서는 스파이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다 체포되는 등 스파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하지만, 후반에서는 그저 화려한 블럭버스터 형 액션을 위해 컴퓨터 그래픽 떡칠을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죠.

말이야 바른 말이지, 스파이 영화에서 패러 글라이딩을 위한 컴퓨터 그래픽이 왜 등장하냔 말이죠.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오히려 박진감 넘치는 혈투입니다. 골든아이에서 Sean Bean과 싸울 때 보여준 그 액션 말이죠.
더군다나 "Time to face gravity"라고 말하고는 엔진 노즐에 처박아버리는 미스 센스는 뭔지...
물론, 대한민국 관객들에게는 창천5동이라고 적힌 글자가 더 불만이었습니다.

반면에, 비슷한 시기(2002년)에 나온 영화 본 아이덴티티는 관객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전편을 능가하는 혈투도 멋있었고, 스파이는 저런 것이라는 인상을 확실하게 심어줬습니다.
1960년대 Sean Connery가 심어줬던 그 인상 말이죠.

이에 자극 받은 EON 프로덕션의 제작자들이 차기작인 Casino Royale에 쏟아 부은 관심과 정성의 결과로 나온 영화 Casino Royale(2006)은 보시던 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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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불만은 2007년 1월에 개봉했으면 007이란 숫자를 상징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란 것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James Bond(와 The Black Curtain)의 오마주로 시작한 작품이 James Bond를 능가하고 James Bond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James Bond를 정상 궤도로 돌려놓는 역할을 보여주게 된 것입니다.

p.s.1 이 시리즈는 Ludlum 사후에 Eric Van Lustbader 라는 작가가 Bourne Legacy(2004), Bourne Betrayal(2007)이라는 속편을 썼는데, 평이 좋지 않더군요.
p.s.2 본 아이덴티티는 영화화 되기 전에 1988년에 3시간짜리 미니 시리즈로도 만들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