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치맨]: 찌질한 히어로들이 보여주는 아이러니의 결정판

스포일러 경고! 스포일러로만 가득찬 리뷰입니다!



이 영화는 무려 2시간 41분의 긴 러닝타임에 (은퇴하거나 체포된 히어로들을 제외하고도) 6명이나 되는 수퍼 히어로가 등장하는데다 무려 [300]의 잭 스나이더가 감독을 맡았지만, 별다른 액션은 없는 드라마 위주의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원작 만화인 <왓치맨>은 휴고상을 수상한 명작만화이며, 영화는 만화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이런 상을 수상하고, 수많은 팬들이 생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전형적인 수퍼히어로물이 아니라 "찌질한 히어로"들의 드라마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배트맨 비긴즈],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사람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진중한 고민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히어로물의 기본은 그는 우리와 다르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왓치맨]의 히어로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고민을 하고, 자기들끼리 티격태격 싸움은 물론, 자기들끼리 바람도 피우고, 심지어는 살인은 물론 (히어로들 간에)강간(ㅡㅡ;)같은 범죄도 저지르는 인간군상들입니다.
다양한 찌질이들이 다른사람보다는 눈꼽만큼 큰 힘을 가졌다고나 할까요?


1. 아이러니... 아이러니...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찌질이들이 초(?)능력을 가졌을 때 보여줄 수 있는 아이러니를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 실크 스펙터의 엄마이자, 초대 실크 스펙터인 샐리는 비록 강간을 하려던 놈과 하룻밤을 보내며 딸을 가졌지만, 딸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신과 같은 존재인 닥터 맨하탄이 (거짓 투성이의)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고작 하는 짓은 신념에 찬 동료를 살해하는 것 뿐입니다.
게다가, 자신과 동거하는 여자에게 사랑을 해준답시고 하는 짓은 분신을 둘 만들어 쓰리썸(ㅡㅡ;)을 해주는 것입니다.

세계 평화를 어쩌고저쩌고하는 궤변만 늘어놓는 오지맨디아스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평화(?)를 얻은 뒤에 그는 (아마도 무한한 수준의) 부와 명예를 쥡니다.

올빼미 가면을 뒤집어쓰고 정작 하는 일이라고는 비행기 조종과 오바하는 동료들 말리다 말기 외엔 하는 일이 없는 나이트아울은 결국 끝까지 뭔가 할 듯 하면서 아무 것도 안 합니다.

시니컬하게 세상을 바라보며 심지어 자신의 아기를 임신한 여자를 비정하게 사살하는 코미디언은 정작 다른 사람의 음모를 알게되자 질질짜는 찌질함을 보입니다.

이러한 캐릭터의 입체성은 작품을 생동감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2. 주제를 충실히 보여주는 오마주

이 영화는 미국 사회 및 정치 전반을 비꼬는 작품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 중에도 특히 인상깊은 장면들은 [J.F.K]의 캐네디 암살, [지옥의 묵시록]의 '발키리의 비행' 씬, [블레이드 러너]의 비오는 밤풍경의 오마주와 [람보 2]의 영화 화면입니다.
(이 외에 냇 킹 콜의 "Unforgettable", 사이먼&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 등도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주제를 충실히 보여줄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의 분위기에도 잘 녹아있습니다.

※ 초반 호텔 씬에서 3001호 문패에서 재떨이 한 방에 1이 떨어져 300만 남는 장면이 있는데, 자신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가 아닐까 합니다.


3. 일부 캐릭터의 태도는 이해가 잘 안 감

그런데, 원작 만화를 읽어 보지 않고, (당연히) 팬도 아닌 저로서는 일부 캐릭터의 태도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비록, 그 부분이 영화의 주제이긴 하지만 말이죠.

수퍼 히어로로 활동하며 동료 히어로에게 강간을 당할 뻔 했음에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모습은 전혀 이해되지 않습니다.
또, 비정하게 사람을 죽이던 코미디언이 정작 다른 사람이 학살을 계획하자 질질짜는 모습은 영화(만화)의 도입을 위한 억지 설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코미디언이 그런 꼴을 당하지 않았으면 이야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특히, 가장 어이가 없게 느낀 캐릭터는 닥터 맨하탄입니다.
인류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는 그가 나름의 '기적'을 느낀 것이 고작 코미디언의 수십억개의 정자 중에 하나가 실크 스펙터가 되었단 점입니다.
더군다가 그녀는 코미디언의 성격과 그리 다르지도 않습니다. (기적이 되려면 성격이 좀 다르던가요...)
연인이 아닌 사람과의 섹스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모습이나 수퍼 히어로서 활동하는 모습들에서는 별 기적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로어셰크를 살해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로어셰크를 살해하는 것이야 이해가 가지만 오지맨디아스를 안 죽이더군요.
문제는 오지맨디아스는 닥터 맨하탄의 인간성이 남아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작전을 꾸몄단 점입니다.
인간성이 남아있다면 그를 죽였어야 맞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를 죽인다고 세계평화가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이 찌질이 스머프가 그런 수준의 생각을 할 줄 몰라야 맨하탄이죠...)

쓰리썸의 달인 찌질이 스머프


4. 코미디언의 연기는 몰입이 안 됨

(만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이 작품 전체의 주제가 될 수 있는 대사가 "모든 것은 조크야."가 아닐까 합니다.
굉장한 허무함이 느껴져야 전체의 주제가 완성될 것 같은데, 그런 느낌이 들지 않고 좀 겉도는 느낌이더군요.
베트남전 학살장면에서의 그의 모습과 질질짜는 그의 모습은 한 사람의 양면이라기보다는 두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5. 불편하기만한 고어씬

원작 만화의 아우라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수퍼 히어로물인데... 정작 멋진 액션은 거의 없습니다.
초반에 잠깐 나오는 것 외엔 교도소에서 찌질이 범죄자들이랑 노는 것이 전부입니다.

오히려 그 자리를 대신에서 도끼씬이나 피떡씬과 같은 고어씬이 자리를 잡았는데, 일부는 원작 만화에도 나오지 않은 장면이더군요.
원작을 살려 액션을 많이 넣지 않은 것이라면 원작에 없는 고어씬은 왜 들어갔을까요?


6. 로어셰크는 최강!

로어셰크는 캐릭터 뿐만 아니라 배우의 연기면에서도 극강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 닥터 맨하탄이 그를 죽이는 장면에서 그의 표정연기는 굉장히 섬세합니다.
자칫 오바할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적절한 선에서 연기를 해내더군요.
그의 목소리부터 모든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로어셰크야말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덧1, 이상하게도 저에겐 정말 재미가 없는 영화더군요.
[다크나이트]를 보고나서 전혀 관심도 없던 배트맨의 원작 만화들을 찾아본 저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서 굳이 원작 만화를 찾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만큼 영화에서 만화의 내용을 충실히 담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덧2, 번역 제목이 무려 [왓치맨]인데, 원제는 복수형인 "멘"입니다.
게다가 원래 watch는 군대에서 '당직'이나 야경꾼(night watch)을 의미하기도 하고, 영화에서는 살인이 나든말든 무관심한 히어로들(특히, 맨하탄 ㅅㅂㄹㅁ)이 보기(watch)만 하는 것을 비꼬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을 담을 수 있는 번역 제목은 찾기 힘들 것 같습니다.

덧3, 이번에도 발번역은 박지훈씨가 맡아주셨는데, 좀 심합니다.
가장 인상깊을 수 있던 대사가 "I'm not a comic-book villian."이었는데, 굉장히 엉뚱하게 번역되었더군요.
(정확한 번역 대사는 까먹었습니다 ㅡㅡ;)

덧4, 바구미 님과 페니웨이 님의 지적으로 오류를 수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