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배우 분석 #3 Roger Moore

3. Sir. Roger Moore : 노년에 들어서야 사실적인 이미지로 돌아온 영감님 007


앞의 제임스 본드들과는 달리 무려 45세의 나이에 첩보원 계에 투신하신 로저 무어 경은퇴할 때의 나이가 무려 58세였습니다.

덕분에 기존의 강하고 터프한 이미지는 몽땅 버리고 새로운 이미지의 본드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결국은 나이에 맞게 (어쩔 수 없이) 부드러운 이미지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년의 달콤한 신사 이미지의 제임스 본드를 구축한 로저 무어 경은 사실, 2가지 버전(?)이 존재합니다.
70년대(<죽느냐사느냐>~<문레이커>) 버전과 80년대(<유어아이즈온리>~<뷰투어킬>)버전의 두 가지입니다.

吳공본드 님이 70년대와 80년대의 무어로 선을 그으셨는데, 타당한 선긋기라고 생각해서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a. 70년대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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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에게 커피를 타주면서 질질 흘리는 본드

첫 두 작품인 <죽느냐사느냐>와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그의 이미지는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소설 [죽느냐사느냐]는 친구 필릭스 라이터의 부상에 대한 복수극이 주 플롯이기 때문에 상당히 거칩니다.
또, 소설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는 앞의 임무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제임스 본드의 자아찾기가 주 내용이라서 상당히 어두운 분위였습니다.

이러한 두 작품의 핵심 부분이 잘라내고, 무어의 밝은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하다보니 두 영화는 이도 저도 아닌 밋밋한 영화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번째 007 소설인 [죽느냐사느냐]은 [카지노 로얄]에서 보여준 인간적인 약점을 제거한 소설로, 친구 필릭스 라이터의 부상에 대한 복수극이 주 플롯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런 플롯을 제거해버렸습니다.
(영화 <살인면허>의 필릭스가 상어에게 물리는 장면이나 <유어아이즈온리>의 보트에 끌려다니는 장면들이 소설 [죽느냐사느냐]의 핵심 부분입니다)

소설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는 앞의 임무인 [두번산다]에서 실종된 본드가 소련에 잡혀가서 세뇌당한채 돌아와서 M을 죽이려고 하다 실패하고, 다시 (임시로) 복직되어 자아를 되찾기 위해 00요원을 살해한 스카라망가(및 그와 연계된 미국의 갱스터들)를 제거한다는 내용이 주 플롯입니다.
그런데, 앞 뒤 다 잘라먹고 킬러와의 1:1 총질만 남아서 어설픈 이소룡 패러디 + 어설픈 서부극 패러디의 수준을 보여준 것입니다.

두 작품에서 제대로 된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한 제작팀은 세번째 영화로 원작 소설에서 제목만 빌린 스펙타클 영화를 기획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무어의 2가지 본드 이미지를 구축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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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us Esprit 잠수함 버전

a1. 특수장비에만 의존하는 첩보원

헬리콥터로 공격하면 잠수함 미사일로 응수하고, 보트에 달린 행글라이더를 타기 위해 보트를 일부러 절벽으로 몰아가는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가 이 때 만들어졌습니다.

이전까지의 본드 영화에서는 차에 달린 특수장비를 활용해서 위기상황에서 벗어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흔히 <골드핑거>의 본드카를 많이 기억하는데, 그 애스턴 마틴으로는 탈출에 성공하기는 커녕 차가 오히려 대파되고 맙니다)


a2. 악당의 이미지보다 약한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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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느 분이 주인공이신지…?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스카라망가, 2편이나 등장한 죠스나 <옥터퍼시>의 킬러 고빈다처럼 주인공의 이미지를 가볍게 능가하는 (때로는 만화같은) 악당이 등장하고 그 악당을 이김으로써 주인공이 더 강하다는 만화적인 플롯을 구축합니다.

이 방식은 주로 만화에서 이용됩니다. 주인공의 라이벌이 주인공보다 강하고, 그것을 이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뒤에 라이벌을 이긴다는 소년 스포츠 만화들 말이죠.

이 두 가지 이미지 덕분에 제임스 본드 영화는 만화같아졌으며, 동시에 캐릭터의 포스도 약해졌습니다.


b. 80년대 버전

70년대의 마지막 본드는 <문레이커>에서 황당하게도 (동시에 쓸데없게도) 우주에 나가서 삽질을 하게 됩니다.
삽을 다 파고서야 정신을 차린 제작진은 본드를 소설로 다시 뫼셔오기로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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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차인데… 그죠?

결국 특수장비를 포기한다는 대수술을 거친 다음에야 무어의 본드는 제위치를 찾습니다.
<유어아이즈온리>에서 이러한 대수술의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로터스 에스프리의 폭파장면입니다.

이후 <옥터퍼시>에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좀 심하게 패러디하기는 했지만, 현실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이미지의 본드를 성공적으로 연기했습니다.

b1. 황당한 특수장비를 버린 007

1980년대의 무어의 본드는 특수장비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반사도를 떨어뜨리는 투시용 안경이나 황산이 들어있는 만년필 등 상식적으로 있음직한 것을 제외하면 미사일이 나가는 자동차행글라이더가 달린 보트 등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몸으로 때우는 스파이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네, 보여준 것이 아니라 보여주려고 할 뿐입니다)


b2. 현실적인 악당들과 현실세계에서 싸우는 본드

이게 무엇보다 반가운 점입니다.
쓸데없이 지구 정복한답시고 엘리트만 남기고는 우주에서 인간을 멸종시키려는 바보(엘리트만 남으면 엘리트가 농사짓고, 석탄 캐야 한다는 거…)나 우주에서 우주선을 납치해서 세계 3차대전을 일으키려는 돈 많은 악당은 (한동안) 보이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나쁜 짓을 하는 악당들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b3. 때론 냉혹한 본드

<살인번호>에서 논란거리였지만, 결국 본드의 성격을 규정짓게 된 장면 중 하나가 비무장인 덴트 교수를 쏘고, 등에 확인사살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살인을 하고 난 본드가 소음기를 부는 장면에서의 코너리의 포스는 덜덜덜 수준입니다)
그 장면을 무어 버전으로 그린 장면을 <유어아이즈온리>에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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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너 비무장이지? 그런데, 죽어줘야겠어.



b4. 그런데, 본드의 능력치는 들쑥날쑥

한번 본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정확히 기억해서 조회할 수 있는 기억력을 보여주어 <썬더볼>의 오라를 보여주거나 경매장에서 당당하게 보석을 바꿔치기해서 정부자산을 확보하는 멋진 손재주를 보여주다가도 자기가 꺼낸 약품의 위치를 잊어버려 발각당하는 실수도 합니다.
 


b5. 최대의 약점: 연로하신 관계로 액션이 안 됨

션 코너리 시절 본드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맞짱이었습니다.
코너리는 어떤 상대와 맞짱을 떠도 이길 것 같은 오라가 있었는데, 80년대의 본드에게는 오라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50대 중반의 노년기에 접어든 분께 액션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입니다)

그리고, 덕분에 상당부분의 액션 장면을 대역이 얼굴을 숨겨가며 대충 촬영하게 됩니다. (클로즈업 촬영 자체가 안 되니까요)
그래서 특수장비는 버렸지만, 몸으로 때우는 스파이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시도만 하고, 결국은 도망다니거나 탈출하는 모습으로 갈음하게 됩니다.
(<옥터퍼시>의 정글 도망 장면이나 <뷰투어킬>의 화재 탈출 씬이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할아부지… 할아부지 맞는지를 확인할 수 없어요


b6. 최대의 약점을 위트로 보완

액션이 되지 않는다는 약점을 적절하게 보완하기 위한 그만의 수단이 위트였습니다.
코너리 때에는 냉소적인 비아냥 성 조크를 사용했지만 위트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무어 대에서는 위트 넘치는 대사로 액션이 안 된다는 약점을 절묘하게 피해나갔습니다.


결과적으로 무어의 본드는 ① 액션이 안 되는 것을 무리하게 끌고가지 않고 부드러운 위트로 커버했고 ② 이로 인해 옷빨이 안 선다는 약점도 슬며시 피해갔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③ 사실적인 본드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그만의 또다른 본드 이미지를 갖게되어버렸습니다.


덧1. 무어의 오래된 루머 중 하나가 <옥터퍼시>를 제작할 때 스턴트맨 없이 모든 액션을 직접 소화했다는 얘기입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코너리나 크레이그처럼 몸짱 본드도 스턴트맨이 상당부분 대역 촬영을 했습니다.
폴 웨스턴이라는 스턴트맨이 무어의 대역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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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2. <뷰투어킬>에서 가장 어색한 장면들은 러브씬이었습니다.
저 때 무어의 나이는 이미 58세. 무어가 플레이보이의 사장 휴 헤프너도 아닌데 왜 찍었는지 모를 장면입니다.
물론 내용상으로야 아직 45세가 되지 않았을테지만 그런다고 보이는 이미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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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pennyway.net BlogIcon 페니웨이™ 2008.03.28 11:38 address edit & delete reply

    로저 무어에 대한 평가를 한 어느 잡지의 글이 생각나는군요 "로저 무어가 보여준 제임스 본드는 플레이보이에 가까운 것이어서 어떻게 보면 원작의 본드에 오히려 더 근접한 인상을 남겼다" 고요.. 사실 저는 숀 코네리 보다는 로저 무어의 007이 더 먼저 떠오르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제가 극장에서 처음 본 007이 [옥토퍼시]였구요^^;;

    그럼에도 로저 무어가 출연한 007은 요즘 수준으로 보면 참 지루하기 짝이 없더군요. 그래서 숀 코네리의 007이 더 인정을 받는거구나 싶기도 합니다. 냉혹하기로 따지자면 피어스 브로스넌의 제임스 본드가 한 수 더 위이지 않나요?

    • Favicon of http://zockr.tistory.com BlogIcon BLUEnLIVE 2008.03.28 11:44 address edit & delete

      브로스넌은...

      1. 여자를 죽이는 모습도 나오고
      2. 칼로 찔러죽이는 모습도 나오면서

      냉혹한 이미지와 동시에 원작을 느낌을 많이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정말 소설 속의 본드랑 비슷하다고 봅니다.
      (대본이 좀 약해도 흥행에 성공한 것은 브로스넌의 카리스마 덕분 아니겠습니까)

      참, 전 극장에서 처음 본 것이 [리빙데이라이트]였습니다.

      그리고, 저 평가… 저도 봤습니다. 바로 (제가 싫어하는) 새로운 본드가 나올 때 본드를 광고하기 위한 문구중 하나였습니다. (아마 달튼 홍보 분석 기사에서 본 것 같은데요...)

    • Favicon of http://pennyway.net BlogIcon 페니웨이™ 2008.03.28 12:01 address edit & delete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한때 미친듯이 구독해서 탐독하던 로드쇼에서 라이센스 투 킬의 개봉 시기와 맞물려서 특집으로 다룬 제임스 본드 백과 비슷한 컬럼이었습니다. 그 자료에 보면 역대 본드, 본드걸, 악당, 영화소개와 평점 등이 모두 소개되었는데요, 정말 빠방한 자료인데 지금은 어딨는지 원.. ㅡㅡ;;

    • Favicon of http://zockr.tistory.com BlogIcon BLUEnLIVE 2008.03.28 12:03 address edit & delete

      아항! 맞는 것 같습니다.
      로드쇼... 손에 있는 山자 문신에 대한 언급도 거기서 처음 읽었습니다.
      (소설 카지노 로얄에서 Smersh의 킬러가 새긴 것이죠)

  2. Favicon of http://ogongbond.blogspot.com BlogIcon 吳공본드 2008.03.28 12:46 address edit & delete reply

    얼마전에 로저 무어 주연의 '세인트' TV영화를 DVD로 봤는데요,
    거기서 로저 무어가 이름을 '템플라, 사이몬 템플라'라고 소개하시더군요...ㅋㅋ
    그때 그 스타일을 그대로 007 시리즈로 모셔오신 것 같습니다.
    숀 코네리를 존 웨인에 비유한다면 로저 무어는 딘 마틴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희극배우처럼 보였죠.
    '유어 아이스 온리'부터 무어의 본드영화가 약간 진지해진 건 연세 때문이라고 봅니다.
    주연배우 나이가 50대 중반인데 영화내용이 지나치게 아동용 같아서야 되겠냐 했을지도...ㅋㅋ
    그럼에도 제가 로저 무어의 제임스 본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때론 너무 희극배우처럼 보이긴 해도 군인/장교역에 정말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Favicon of http://zockr.tistory.com BlogIcon BLUEnLIVE 2008.03.29 09:06 address edit & delete

      아마 무어가 대위 출신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정복을 입은 모습은 사실 무어만 자연스러워 보였거든요.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해군 정복이나 옥터퍼시의 육군 정복 모두 말이죠)

      코너리는 위장했다는 느낌이 들었고,
      브로스넌은 코스프레 분위기였는데,
      무어는 "장교"라는 느낌이 딱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