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를 보고나서 스탠리 큐브릭이 문득 그리워지는 이유는…

"미국인들은 비극을 만드는 재능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과거로부터 뭔가를 배울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측면에서 보면 큐브릭은 미국인이 아니다"
- 프레데릭 라파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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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이 이제 27년 9개월이 지났습니다. 얼마 후면 30년을 채우게 되는군요.

2007년 6월에 개봉한 영화를 2008년 2월이 되어서야 DVD로 봤습니다.

당시 광주에서 이 현장을 목격하고 살아남으신 분들께서 영화처럼 평온했으면 한 번 해볼만 했을 것이라고 하실만큼 영화의 장면들은 희석되고 완화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서 문득 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는 이러한 내전을 소재로 영화를 찍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그의 "작가주의" 정신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아니, 상상해서도 안될 것 같은 끔찍한 일이 30년 전에 광주에서 발생했습니다.

이후 약 30년동안 자칭 신군부라는 조직은 하나회라는 정식 명칭을 얻어 득세했다가 다 늙어버렸으며, 군사독재는 끝나고 어느정도 틀이 잡힌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이루어졌고, 폭도들의 국가 체제 전복 시도로 보도되었던 그 사건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제대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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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습니다. 이건 강경진압+α 수준에 불과합니다

지금이라면 단지 당시의 사건을 소재의 일부로 삼는 것을 넘어서 그 사건에만 집중한 영화가 한 편 나올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면, 당시의 희생자분들 가족이 생존해계시고, 희생자분들의 2세가 뭔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 시점이라면 당시의 사건에 대해서 역사적 기록, 당시 시민군 참가자의 증언, 그 가족의 증언, 당시 참가했던 군인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감정 없이 당시 상황만을 담은 즉, 순수하게 그 사건에만 집중한 영화가 한 편 나와야 합니다.

당시 광주시민은 분명히 피해자입니다. 하지만, 속칭 계엄군으로 투입된 군인들도 피해자입니다.
그 군인들도 (당시에는 이성을 잃은 상태였지만) 이성을 갖고 뭔가 크게 잘못했다는 판단을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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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 생존해 계실까요?

그런데, 꽃잎, 박하사탕, 화려한 휴가, 최근에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까지 우리의 영화에서 그 사건소재의 틀을 넘어서 묘사한 영화는 없습니다.

화려한 휴가에서는 그 한계를 넘어서기를 기대했지만(그리고, 넘어선다고 광고했지만) 결국 그 한계를 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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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이 그립습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그리워지는 것은 (그가 다른 영화를 촬영할 때 그러하였듯이), 그와 같은 순수한 작가정신으로 당시 광주에서 발생했던 사건을 누군가가 담아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영화를 촬영하면, 촬영을 준비하는 기간에 그는 그 주제에 대해 전문가가 될 때까지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고, 또 연구했습니다.
(2001 : A Space Odyssey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영화가 아닙니다)

지금이라면 누군가가 이 사건에 대해 큐브릭의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요? (폴 그린그래스 감독님. 혹시 [블러디 선데이 part2 : 광주] 생각 없으신지요?)
※ 1980년 5월 18일도 일요일이었습니다.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된 공수부대 대원들 중에는 장교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이 장교들이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학살에 참가하게 된 것은 공수부대 장교가 공수부대 장교답지 않게 비겁하고 나약했기때문이 아니었을까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인이 카미카제 공격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용감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공격법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 2차대전 관련 다큐멘터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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