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웃 블럭버스터 "I Am Legend"가 불편한 이유

I Am Legend가 사실, 블럭버스터냐고 따지면 애매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주연배우 하나만으로도 "블럭버스터" 소리는 들으니까... 블럭버스터라고 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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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연출하여 유명해진 라쇼몽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시는 걸작이라 영화의 줄거리는 간략하게 넘어가겠습니다.
산적 타조마루가 사무라이 타케히로를 죽이고 부인을 겁탈한 사건에 대해 관련자 4명(3명 + 사무라이의 영혼)의 진술은 서로 엇갈린다. 그리고, 최후까지 진실은 알 수 없다. (화자인) 승려는 결국, 아이를 데리고 가기로 한다.

결국, 당시 시대(긴 전쟁-그것도 패전-의 결과로 엉망이 되어있는 일본)의 현실에 대해서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떠들어봤자 자신에 대한 합리화를 위한 거짓말밖에 늘어놓을 것 밖에 없으니 과거는 무시하고 미래를 향해 가자는 메시지가 담긴 영화였습니다.

이 해석은 100% 저의 주관적인 해석입니다. 생각이 다른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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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에 멕 라이언덴젤 워싱턴이 주연한 Courage Under Fire라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역시 다 아실만한 영화가 줄거리는 간단하게 적겠습니다.
사막의 폭풍작전에 참가한 구조 헬기 조종사인 Walden 대위는 교전상태에서 총상을 입는다. 다른 구조팀에 의해 모든 승조원은 구조되나 Walden 대위는 구조되지 못하고 아군의 네이팜탄 폭격으로 목숨을 잃는다. 이 사건의 조사를 맡은 설링 소령은 모든 관련자의 증언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조사 결과 Walden 대위는 진정한 전쟁영웅임을 밝혀내고, 범인은 자살한다.

라쇼몽과 비교해보면 "증언이 상충한다"는 소재를 그대로 현대전쟁(걸프전)에 적용했을 뿐 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지만, 오프닝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듯이 이 영화는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몽의 리메이크입니다.

원작의 깊은 줄거리와 철학은 다 지워지고, "미국 만세! 미국 만만세!"로 종결되죠.
게다가, 범인을 자살하게 함으로써 마지막에 범인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는 기회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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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Legend도 (이 경우는 원작 역시 미국 소설, 미국 영화지만) 이와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물론, 의도적인 것이겠지만요)

원작의 본질은 "내가 마지막 남은 인간이고, 새로운 종족이 번식했다면 난 그저 한물간 종족인 뿐인가?" (즉, 모두 눈이 3개면 나만 돌연변이?) 라는 철학적인 질문입니다.

이것 역시 100% 저의 주관적인 해석일 뿐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런 철학적인 질문을 소재로만 적용했을 뿐 결과는 역시 완전히 다릅니다. 로버트 네빌 대령의 직업은... 네, 군인입니다. 그것도 Courage Under Fire에서 지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던 분들과 같은 미군입니다.
인류에 남은 인간을 이끌고 구원할 사람은 역시 미군이라는 설정이죠.

그리하여 미국이라는 국가는 구원의 주체라는 설정이 또 다시 반복되었습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어떠한 소재를 끌고오든지 미국 만세로 끝낸 영화가 한두편이 아니지만, 여기 언급한 두 편처럼 원작이 훌륭한 작품마저 이렇게 뒤틀어버린 행태는 정말 불편합니다.